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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장래희망은 무엇입니까?

 

안녕하세요, 피카츄백만볼트입니다.

오늘은 5월의 긴 황금연휴가 얼마남지 않은, 4월 27일 월요일입니다. 목요일부터 연휴다!라는 생각으로 월요병을 이겨내고 있는 직장인 피카츄인데요, 주말의 여파로 피곤함이 가시지 않아 가볍게 마인드 맵을 정리하는 시간을 가지려고 합니다.

인별그램이나 얼굴북 등 다양한 SNS에서 수없이 소개된 짤이 있습니다. 아마 다들 한번쯤은 보고, 들어보셨을 거라 생각하는 EBS 한국사 최태성 선생님의 '동사형 꿈을 가져라'라는 명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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착각하지 말라니, 뭘?...이라고 생각했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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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과 꿈은 다른거라니! 망치로 한대 맞은 것 같은 느낌이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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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년 넘는 인생에서 지금까지 수없이 들었던 "너의 꿈은 무엇이냐?" "장래희망이 뭐냐?"에 대한 답변에, 동사형 문장으로 풀어써서 기술하거나 생각한 적도 많이 없었어요.

저는 여태 명사형 꿈을 말하고 다녔습니다. 학교에 내야하는 '고작 몇글자 쓸 수 있는 칸이었던 장래희망'란에는 법관, 변호사, 외교관이 단골손님이었죠.

아, 예외적으로 풀어서 설명했던 적도 있었네요. 바로 1) 대학입학 면접을 볼 때, 2) 취업 자소서를 쓸 때, 3) 취업 면접을 볼 때였어요.

주객이 전도된 느낌이었습니다.

내 자신과, 나와 오랜 시간을 같이 보내는 사람들에게 "나는 어떤 사람이고, 어떤 사람이 되고 싶다" 대화해야 하는데 나를 처음 만나서 짧은 시간동안 평가하려는 사람들에게, "나는 이런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외치는 꼴이었어요. 그러니 그런 면접을 준비하는 과정도 힘들었고(말을 예쁘게 만들어야 하니까요), 자연스럽게 나를 PR하는게 아니라 긴장하고 잘 보이고 싶어 역효과가 나기도 했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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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순서 9. 끝.

 

최태성 선생님은 고등학교에서 무척이나 잘 나가는 역사학 강사였다고 합니다. 강의력이 너무 좋아서 EBS 강의를 찍게 되었는데, 완전 국민대스타로 일타강사가 되니 뭇 학원들에서 고액의 연봉과 처우를 준다며 수많은 스카웃 제의가 들어왔다 했죠.

여기서 일선 학원의 일타강사로 가셨더라면, 선생님도 그저 담대하지만 소시민적인 사람이었을 수 있었겠지만 쌤은 내 목표와 꿈은 돈 버는 것이 아니다, 하시며 계속 많은 학생들을 위해 저렴&고퀄의 강의를 찍어 제공하고 계십니다.

 

EBS 최대성 선생님의 동사형 꿈

 

대도서관 프로그램을 보고, 정말 가슴이 찡해졌습니다. 그리고 저분은 정말 알맹이가 꽉 찬 인생을 살고 계시는구나, 하는 생각에 존경스럽기도 했지만 무척이나 부러웠었죠.


(제 블로그니까 ㅎㅎ) 이제 제 이야기를 좀 해보려 합니다.

저는 깨어있으신 부모님 덕에 영어 조기교육을 받았고, 나름 언어에 흥미를 느껴, 유년시절 영어공부를 즐겨하고 성적도 잘 받는 학생이었습니다. 그래서인지 (문과였던 저의) 꿈은 자연스레, 공부 잘하는 문과생이라면 다들 꿈꿀 판검사, 변호사 이거나 외교관이었어요.

나름 명문대에 입학해 3학년 때부터 외교관이 되기 위해, 외무고시 준비를 했습니다. 매일 도서관과 신림동 고시촌에서 청춘을 헌납하며 공부를 했지만 3년의 시간을 쏟아붓고는, 계속되는 낙방에 꿈을 접게 되었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당시 제가 외교관이 되고 싶었던 이유는 "외국어를 주로 사용하면서, 한국을 대표하며, 공적인 업무를 하고, 화려한 삶을 살 수 있는" 직업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어요. 

내가 외교관이 되어서 "타 국가에서 처우가 평등하지 않는 재외국민 권리 개선을 위해 힘을 보태줘야겠다"라던가, "국제분쟁에서 국익신장을 위해 전문성을 무장한 대변인이 되겠다" 혹은 "국제사회에서 한국이 중요한 플레이어로 활동할 수 있게 교두보 역할을 하겠다" 같은 구체적인 바람이나 목표는 .. 떠올리지 않았던 것 같아요.

아마 제가 공부기간 동안 체력적으로, 심적으로 힘이 들 때 "좀 더 더 힘내자!" 라던가 "이정도야 이겨낼 수 있어, 난 ~하는 사람이 될거니까!"라고 마음을 쉽게 다잡지 못했던 것도 그 동기부여가 약해서였다고 생각합니다.  


고시에 떨어진 후, 한 공기업에 취업한 저는, "영어를 주로 사용하고, 제가 다니는 회사와 한국 공공분야를 대표하여, 국제금융시장에서 투자자 관리"를 하는 국제금융업무를 했습니다. (지금은 잠시 다른 포지션으로 이동한 상태입니다) 회사 내에서 인기 직무였던, 국제금융업무를 할 수 있었던 까닭은 제가 취업해서도 1) 계속 외국어 공부를 손에서 놓지 않았고, 2) 제가 하고싶은 업무가 무엇인지 꾸준히 생각하고 직장 동료와 상사분들께 어필했기 때문이에요. 

뒤돌아서 제 지난 10년을 보니, 저는 '그 무대만 달리했을 뿐'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있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저는 앞으로 관리자급으로 승진을 해서, 해외법인으로 나가 사업운영을 해 보고 싶습니다. 리스크는 최소화하고 수익은 극대화해서 제가 다니는 회사, 나아가선 한국 공공분야에 도움이 되고 싶어요.

꿈은 계속 바뀝니다. 정확히 말하면, 내가 하고 싶은 것은 계속 바뀝니다. 

어른이 되었어도 꿈을 버리지 말고 (아이도 아닌데, 무슨 꿈이야하는 생각 말고) 나는 내 남은 인생동안 ~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 끊임없이 생각하고 그 길로 가려고 노력한다면 "그 장소만 달리할 뿐" 언젠가 나는 ~하는 사람이 되어 있을 거예요.


같은 맥락에서 "부자가 되고싶다"의 바람보다는, 

부자가 되어서 "저소득층을 도울 수 있는 재단을 설립하여 운영해 본다던가," "부를 이용하여 모두에게 도움이 될만한 발명품이나 창업을 해 보고 싶다던가," 저는 애완견을 좋아하기 때문에 "유기견 처우를 개선시킬 수 있는 어떤 환경을 만들어보겠다" 등의 구체적인 바람이 있다면,

재테크 공부를 하고 부를 축적해 나가는데 더 신바람 나지 않을까 싶습니다.

이상 피카츄의 일기같은 감상문이었습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해요.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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